🎠 빼놓을 수 없는 일상/🚙 내 연보를 남기자

내 고교시절 아버지의 알콜중독이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토리랑영원히 2024. 4. 19.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족.. 정확히 나와 내 동생은 아버지의 지독한 음주에 대해 말그대로 그냥 아버지의 음주가 지나쳐서 싫다 싶은 정도였다... 

난 사춘기고 뭐고 그런 것도 그냥 조용히 넘어간 무난한 성격이라 아버지가 날이 갈수록 무너져가는 것도 그냥 우리 아버지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식이었는데 그런 내게도 아버지의 그런 무책임, 무신경한 모습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래 전 내가 국민학교 상급생이 될 때까지는 아버지도 여느 다른 친구들의 아버지처럼 한 보육원 원장 운전 기사로 일하며 착실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버지가 평범한 직장인을 일하는 모습을 본 건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는데 그 이전에, 내가 국민학생이 되기 이전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내가 본 기억이 전혀 없는데 다른 지인분들께 듣거나 사진으로 본 대로라면 아버지는 그 시절의 일명 딴따라였다. 

 요즘의 연예인중에 음악쪽에 관심을 가진 분이었다는데 앨범의 오래 전 흑백 사진들을 보노라면 그 시절 다 낡아빠진 헐렁한 바지에 런닝셔츠, 거기다 커다란 드럼을 한쪽 팔에 메고 찍힌 아버지의 사진이 몇 장 있다. 

 

 대신 요즘도 그렇지만 그 시절, 메인인 가수도 아니고 뒷쪽에서 드럼을 치는 연주자들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 

그래도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다니는 생활을 좋아했다. 

 

"저 OOO가 내 돈 5천원을 들고 튀었다..."

 

어쩌다 가요 프로그램이 방송될 때 지금은 고인이 되신 모 가수분이 출연할 때면 아버지가 즐겨 하시던 말이다. 

워낙 허풍도 심한데다 갈수록 늘어가기만 음주량 때문에 동생이나 내게는 그냥 흔히 말하는 뻥~~이라고 여겨져 지나쳐버렸지만 나와 동생이 태어나고도 한참동안을 오로지 자신의 꿈만 쫓느라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하고 돌아다닌 만큼 아버지가 남기신 허풍아닌 허풍중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도 있겠지... 

 

 

할아버지에 의해 간신히 바로 잡힌 아버지, 심해져가는 술 의존도. 

 

 워낙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살아가느라 가족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외아들이고 할아버지와는 맞지 않아 거의 마주 대하고 살지도 않았다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을 보러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의 눈에 들어온 나 때문에 손자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할아버지는 적어도 그 때까지는 두고 보고 계셨단다. 

자식까지 생겼으니 자신의 꿈이 너무 허무하다는 것을 빨리 깨닫기를 바라신 게지. 

하지만 그냥 자유분방한 삶에 찌들어 내 동생이 태어난 후까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할아버지에 의해 아버지는 그동안의 일상을 접고 내가 학교에 들어갈 당시, 어느 보육원의 기사로 취직해서 딱 5년 정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그 보육원의 일부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계셨기 때문에 바로 10미터쯤 거리를 두고 가까이 살 수 있었다. 

 

 보육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주어지던 사택. 

우리 가족 모두가 그곳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근무하던 도중에도 수시로 집에 들어오셨다. 

그것만 보자면 무척 자유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좋아보일 수도 있겠지만 드럼을 치던 시절에도 수시로 음주에 손을 대던 아버지의 음주 습관에는 오히려 더 불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잠시 짬을 내서 개인적인 일을 할 수도 있었으련만 수시로 집에 들어와 술병을 찾는 아버지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고.. 

당시 보육원의 운전기사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걸핏하면 술병을 손에 들고 산 덕택에 가끔은 작은 사고도 있었다고 들었다.  

 

 

아버지의 음주는 어머니의 가출로 이어져... 

 

 내가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도 어머니는 수시로 집을 나가서 외가에서 지내신 적이 있다. 

고로, 내가 학교에 입학할 무렵 어머니가 다시 들어오신 계기도 따지고 보면 아버지에 대한 어떤 믿음이 아니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노력이 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제어가 없으면 한도 끝도 없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머니가 그 뒤로 거의 10년을 잘 버티셨지만 서서히 또 한계의 그늘이 다가왔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보육원을 나와 먼곳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무리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실질적인 기둥이었다고 해도 어머니에게는 어쩔 수 없는 시부모라는 이유에서였는지 어머니도 그에 대해서는 그다지 불만이 없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그 시기가 우리 가족이 끝을 향해 달리는 첫 출발이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보육원을 나와서는 두분이 작은 트럭을 구입해 채소 장사를 하기도 했고, 큰이모가 운영하는 재봉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쪽도 다 그만두고.... 

엄마는 뭐라도 꾸준히 이어갈 의지력이 있는 분이었는데 이상하게 아버지와 함께 뭔가를 하다가 아버지가 그만 두면 엄마도 같이 그만 하셨던 것 같다. 

그 때도 변함없이 아버지의 알콜에 대한 의존도는 심각한 지경에 도달해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일을 하고 계시는 모습을 본 건 우리집 앞 작은 아파트의 경비로 일하는 모습이었다. 

 수시로 집에 드나들며 자유롭게 술병을 찾는 일상을 즐기는 아버지에게는 그나마 그곳이 마지막 직장이자 아버지 스스로 자신을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넣는 지름길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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