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보는 일상/⚒️ 내가 도전하는 번역

[일본 고전소설번역] 오사무 다자이의 나는 말할 수 있다

토리랑영원히 2023. 10. 19.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다니는 방송대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학교 번역 스터디에 들어가 공부하고 번역가가 되고 싶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번역. 

별의별 경로를 다 통해서 시도해봤지만 일본어 기초를 간신히 알고 있는 내게는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 단계를 짚어나가는 것조차 힘들었고 그냥 들이밀기식으로는 아무 것도 안되는 걸 알고 포기했었다. 

 지금의 나이가 돼서 어느 정도 공부를 해가는 수순을 알게 되니 조금은 자신이 붙었다. 

물론 잘할 자신이 붙은 것은 아니고 용감하게 시작을 해볼 자신이 붙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막연했다. 

그냥 아무 일본어 원어 소설책을 구해서 혼자 번역해보면 되려나... 

하지만 요즘 자필로 번역 공부를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내가 번역한 글을 누군가에게 공개하려면 블로그만큼 괜찮은 곳이 없는데... 

가장 중요하고도 무시무시한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저작권... 

그런 면에서 확실히 지금 내가 매일같이 들르고 있는 일본어 카페는 정말 가입해두길 잘했다. 

그곳을 통해 저작권이 풀린 소설을 공개하는 소중한 공간을 알게 되었으니까... 

 

 내가 처음으로 독학 번역 공부를 시도하는 작품은 일본 쇼와 시대에 많은 작품을 남긴 太宰 治(다자이 오사무)의 "나는 말할 수 있다"를 선택했다. 

 

 

내게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설가

 

 1909년에 태어나 1948년, 39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작고한 고전 소설작가인데다 그의 살아온 일생을 보면 부유한 편이었던 집안 형편에 비해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잘못된 선택에 대해 스스로를 학대하거나 유부녀와의 부적절한 일상, 연이은 자살 시도 등으로 얼룩진 그의 이력을 보면 이런 작가가 쓴 소설이 절대 내가 읽을 수준일 리가 없다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일단 도입부부터 어느 정도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글로 시작되어 내가 번역 공부를 시작하는데 어느 정도는 유리할 것 같았고 그나마 우리 일상,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락의 현실을 다시 한번 보는 셈 치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위에서 제시한 사이트에는 あいうえお순으로 책 이름을 나열하기는 했어도 장르에 대한 구분이 없어 내 취향에 맞는 작품을 찾아내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어디에 실린 글인지는 찾지 못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생전에 수많은 소설집을 남겼는데 지식 사이트를 아무리 찾아봐도 이 "나는 말할 수 있다"가 어느 소설집에 실려있는 건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집은 현재까지도 판매되고 있는 작품도 있지만 그 이전의 작품도 많다. 

적어도 일반적으로 공개가 된 작품이라면 이 작품이 실린 통소설집의 제목은 알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 수록된 단편 형식의 세세한 정보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게 이해할만 하다. 

 

 

번역, 서론 첫도전 시작

 

I can speak

 

太宰治

 

テキストの中に現れる記号について

 

《》るび

(例)陋巷《ろうこう》

 

[//] :入力者

(例)[#地から1字上げ]

 

나는 말할 수 있다(아마 본 소설집에도 제목이 영어로 표기되어있는 듯 하다.).

 

다자이 오사무

 

본문에 등장하는 기호에 대해서

 

《》 후리가나

(예) 누항 《비좁고 불결한 거리》

 

[//] :입력자주

(예) [ // 현재에서 한글자 위]

 

본문 -------------------------------------------------------------------------------------------------------------------

 

 

くるしさは、忍従の夜。あきらめの朝。この世とは、あきらめの努めか。わびしさの堪えか。わかさ、かくて、日に虫食われゆき、仕合せも、陋巷《ろうこう》の内に、見つけし、となむ。

 わが歌、声を失い、しばらく東京で無為徒食して、そのうちに、何か、歌でなく、謂《い》わば「生活のつぶやき」とでもいったようなものを、ぼそぼそ書きはじめて、自分の文学のすすむべき路《みち》すこしずつ、そのおのれの作品に依って知らされ、ま、こんなところかな? と多少、自信に似たものを得て、まえから腹案していた長い小説に取りかかった。

 昨年、九月、甲州の御坂《みさか》峠頂上の天下茶屋という茶店の二階を借りて、そこで少しずつ、その仕事をすすめて、どうやら百枚ちかくなって、読みかえしてみても、そんなに悪い出来ではない。あたらしく力を得て、とにかくこれを完成させぬうちは、東京へ帰るまい、と御坂《みさか》の木枯《こがらし》つよい日に、勝手にひとりで約束した。

 

 참고 순종해야 하는 밤, 포기해야 하는 아침의 괴로움.

이놈의 세상은 단념하는 게 의무랄까. 외로움의 인내랄까. 젊다고 해봤자 시간에 갉아먹혀가고, 행복도, 구질거리는 이 거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나 자신을 잃고, 잠시 도쿄에서 무위도식하는 동안 뭔가 아무 생각도 없이, 소위 일상의 소소함이라고 표현할만한 일을 조심스레 기록하기 시작했고, 내 문학을 만들어나갈 길을 조금씩, 그놈의 작품에 의지해 알게 되고, 뭐, 이런 식이었다고 할까나. 

이렇게 조금 나자신에게 걸맞은 무언가를 찾아내고 전부터 복안중이었던 장편 소설에 착수했다. 

 작년 9월 코오슈의 미사카 산 정상에 있는 天下茶라는 찻집 2층을 빌려, 그곳에서 조금씩, 그 일을 진행한 것이 그럭저럭 100장 가까이 되었고 연거푸 읽어봐도 그렇게 나쁜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힘을 얻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걸 완성시키지 못한다면 도쿄에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미사카의 혹독한 추위 속에 멋대로 스스로에게 다짐해버렸다.

 

 

ばかな約束をしたものである。九月、十月、十一月、御坂の寒気堪えがたくなった。あのころは、心細い夜がつづいた。どうしようかと、さんざ迷った。自分で勝手に、自分に約束して、いまさら、それを破れず、東京へ飛んで帰りたくても、何かそれは破戒のような気がして、峠のうえで、途方に暮れた。甲府へ降りようと思った。甲府なら、東京よりも温いほどで、この冬も大丈夫すごせると思った。

 甲府へ降りた。たすかった。変なせきが出なくなった。甲府のまちはずれの下宿屋、日当りのいい一部屋かりて、机にむかって坐ってみて、よかったと思った。また、少しずつ仕事をすすめた。

 おひるごろから、ひとりでぼそぼそ仕事をしていると、わかい女の合唱が聞えて来る。私はペンを休めて、耳傾ける。下宿と小路ひとつ距《へだ》て製糸工場が在るのだ。そこの女工さんたちが、作業しながら、唄うのだ。なかにひとつ、際立っていい声が在って、そいつがリイドして唄うのだ。鶏群の一鶴《いっかく》、そんな感じだ。いい声だな、と思う。お礼を言いたいとさえ思った。工場の塀《へい》をよじのぼって、その声の主を、ひとめ見たいとさえ思った。

 ここにひとり、わびしい男がいて、毎日毎日あなたの唄で、どんなに救われているかわからない、あなたは、それをご存じない、あなたは私を、私の仕事を、どんなに、けなげに、はげまして呉《く》れたか、私は、しんからお礼を言いたい。そんなことを書き散らして、工場の窓から、投文《なげぶみ》しようかとも思った。

 けれども、そんなことして、あの女工さん、おどろき、おそれてふっと声を失ったら、これは困る。無心の唄を、私のお礼が、かえって濁らせるようなことがあっては、罪悪である。私は、ひとりでやきもきしていた。

 

 바보같은 약속을 했던 거지. 9월, 10월, 11월, 미사카의 추위는 더이상 감내할 수가 없었다. 

이 때는 어떻게 할지 몰라 불안한 밤이 연이어졌다. 자기 멋대로 자신에게 약속해놓고 이제와서 그걸 깨뜨리지도 못하고 도쿄에 돌아가고 싶어도 뭔가 그걸 파기해버리는 것 같아서 산 위에서 해가 저물어간다. 

  코후로 내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후라면 도쿄보다 따뜻하고 이번 겨울도 거뜬히 지낼 수 있겠다 싶었다.

코후로 내려왔다. 이제 살았다. 기침도 사라졌다. 코후의 마을은 하숙집이 많아 햇볕이 잘드는 방을 빌려 책상앞에 앉아보니 역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조금씩 일을 시작했다. 

 오후쯤부터 혼자 조금씩 일을 하고 있자니 젊은 여자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하숙집과 좁은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사 공장이 있다. 그곳 여공들이 일하면서 부르는 노래다. 그중 하나, 튀는 소리가 있는데 그 여자가 리드하고 부르는가 보다. 

군계일학이라고 하던가, 그런 느낌이다. 좋은 느낌의 목소리다. 고맙다는 말까지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공장 벽을 기어올라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여기 매일매일 당신의 목소리로 구원받는 외로운 남자가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모르겠지요, 당신이 저를, 제가 하는 일을 얼마나 아름답게 격려해주었는지를. 저는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이런 내용을 싹 적어서 공장 창문에서 뿌려버릴까 하고도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게 했다가 그 여공, 놀라고 겁에 질려 갑자기 목소리를 감춰버리면 이것도 난감하다. 그냥 노래를 불렀을 뿐인데, 도리어 내 답례가 망치는 듯한 일로 번지면 큰 실례가 되는 셈이다.  나는 혼자서 애가 타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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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 확실히 번역이라는 단계는 아직 일상 회화를 해석해내는 나에게는 턱이 무척 높다. 확실히 쉽게 접하는 대화체랑 문장으로 접하는 소설은 전혀 차원이 다르구나 하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끼고 오늘은 여기서 일단락!!

 

나는 말할 수 있다의 대강 줄거리는??

 

코오슈 미카사에 서식하며 자신이 나아갈 길을 찾던 남자 주인공이 결심 끝에 코후 지역으로 이사를 하면서 아직 일면식도 없는 여성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자신의 감정 변화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

 

없는 글을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해야 하는 번역, 그리고 감상...

 

 전에 번역에 대한 기초를 눈여겨볼 때 눈여겨봤던 말이다. 

위의 단편 소설에서도 저 말의 의미는 쉽게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문장체니까 학교 교과서처럼 또박또박 자세할 듯 하면서도 작가 자신 특유의 어투가 살짝 살짝 드러나 뭔가 의미는 알 듯 하지만 뭔가 빠져있기도 하고 때로는 불필요하게 들어간 같은 의미의 단어를 빼야 할 때도 있고... 

짧지만 뭔가 계속 막혔던 첫 시도... 

 이 소설에서 오사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의외로 힘든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소소하고 애틋한 감정이었다. 

한 페이지 정도를 남기고 끝낸 이유는 처음으로 진지한 글을 번역 코스프레하려던 무리한 시도의 부작용이기도 했지만 행여나 결말이 오사무 작가의 일생만큼이나 쇼킹한 반전이 있지 않을까 싶은 우려가 겹쳐서였다. 

그래도 처음엔 무척이나 긴장 풀장착 모드였는데 소소한 이야기라서 어느 정도 긴장을 푸는데는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래봤자 결국 오늘은 200% 직역으로 끝나버렸다는 것이 최종 결과다... 

3분의 1정도 남아있는 결말은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되새기며 조금이라도 더 정돈된 느낌으로 다음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주인공 남성이 자신의 감정에 눈을 뜬 결말 부분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난 잠시나마 휴식 모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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