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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아픔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

토리랑영원히 2021. 11. 25.

우리나라 전 국민을 들끓게 하는 일본의 만행에 대한 분노는 수십년의 시대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더욱이 일본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우리들을 향한 새로운 분노 소재를 양산해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떠나야 하는 말 그대로 외국에 대한 분노와 그들에게 짓밟힌 정신대 할머니들의 피해는 여전히 나라 전체를 뒤집는 대사건인데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1950년, 이 땅 한국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전쟁 때문에 생긴 이산가족에 대한 아픈 기억은 그것이 바로 같은 우리나라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도 언제부터인지 예전에 비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금 뒤편으로 밀려난 기분이 든다. 

얼마 전 이산가족에 대한 뉴스가 네이버에 크게 올라왔길래 열어봤더니 남북간의 이산가족이 아니라 최근 코로나로 인해 해외에 있는 가족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솔직히... 아무렴 이산가족이라는 단어가 쓰이기엔 최근 사태는 너무 가벼운 일인데... 

오늘은 무척 잔잔하게 흘러가는 내용이지만 30분도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속에 남북 분단으로 인한 아픔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사는 이산가족의 모습을 진정성있게 담은 단편 영화 "민우씨 오는 날"을 소개할까 한다. 

 

민우씨 오는 날

 

간단한 영화 소개 : 

제목 : 민우씨 오는 날 

개봉 : 2014년

러닝 타임 : 28분

주연 : 고수, 문채원

관람 등급 : 전체 관람가

 

기본 줄거리 : 여전히 한옥주택이 줄지어있는 어느 마을. 

연희는 오늘도 아침부터 벽에 붙어있는 쪽지 속 하루 일과대로 일상을 시작한다.

사라와 즐거운 아침 통화를 하고 약을 먹고 집안 청소를 하고, 하지만 그녀는 늘 아마도 남편으로 추정되는 민우라는 사람을 기다린다. 

곧 돌아온다고 떠난 남편, 민우가 간 곳은 평양. 

늘 남편이 돌아오면 함께 할 시간을 꿈꾸는 연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다음 날 연희는 남편을 만날 꿈에 부풀어 평양행 버스에 오른다. 

 

문채원 주연

 

갓 시집온 새댁으로 보이는 연희. 

무척 낡은 한옥에서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가는 연희는 아침부터 전화로 수다떨기에 바쁜 지인 사라의 음성과 함께 늘 하루를 시작한다. 

영화의 러닝 타임을 보고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28분이라는 짧은 재생시간에 한정된 단편 작품이라 이 작품은 보는 이가 어떤 궁금증을 느낄 여유더 없이 얼마 안가 연희의 현실을 우리가 바로 알 수 있도록 간접적이지만 매끄럽게 제시해준다. 

 

사실은 할머니

 

"너희들 머리꼴을 보고 어디 가겠니??" 

 

오토바이를 타고 두 남녀가 지나가는데 자신들의 미용실에 오라는 인삿말을 듣고 연희가 던진 한마디 대사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연희의 외면이 아닌 내면임을 미리 살짝 꼬집어주고 지나간다. 

 

하루 일과

 

젊은 새댁치고 이상하리만큼 자신의 하루하루를 빼곡히 기록하는 연희. 

그녀는 치매 환자다. 

지금 우리가 시각적으로 보고 있는 연희는 이미 오래 전 평양으로 건너가 소식이 끊긴 남편, 민우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20대에 머물러있는 연희의 모습이다. 

 

숭어탑쌓기

 

시간 맞춰 약을 먹을 때마다 약먹는 횟수 만큼 자신의 기억을 지키려고 애쓰는 연희. 

그녀가 기억의 끝을 놓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사랑하는 남편 민우에 대한 그리움에 있다. 

 

평양냉면집노인학교

 

노인들만 옹기종기 모여있는 평양 냉면집, 치매노인들의 재활원 등을 전전하며 남편 생각에만 잠겨사는 연희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나?? 

 

용달차 운전수

 

그게 아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치매 환자들의 모습은 비참하고 때로는 가족들의 외면에 내던져진 경우도 많이 보아오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메인 주제는 이산가족과 분단의 아픔인데다 혹은 극도로 짧은 러닝 타임때문에 주인공인 연희에게만큼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 외에 다른 고통을 부담시키는 스토리를 넣기가 힘들어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다행히 내용 속 주변 인물들은 모두 연희에게 따뜻하다. 

초반에 지나간 미용실 부부(??)에 이어 시장 사람들, 그리고 동네 용달차 청년 등등. 

아, 그러고 보니 이 짧고도 짧은 영화속에 더 짧게나마 눈에 띄는 까메오들이 보인다. 

미용실 부부는 김수로랑 트럭 운전수는 윤다훈... 

그건 그렇고 윤다훈... 전에 뉴스에 몇 번 오르내린 뒤로 TV에서 거의 못본 거 같은데 많이 망가졌.......... 

 

이산가족 상봉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제 연희가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저 한장의 서류가 우리에게 모든 답을 보여준다. 

 

현실의 연희

 

연희의 현재 모습. 

내가 좋아하는 연극배우 손숙 선생님이 연희의 현재 모습을 연기하셨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연희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쌓여온 민우에 대한 그리움을 손숙 선생님이 얼마나 애틋하게 쏟아놓을 것인가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결렬

 

"내가 받을 사랑 당신이 다 가져갔으니까 죽는 날까지 연희씨 사랑해달라고...." 

 

사라가 한 말이다. 

사라는 연희의 딸이다. 

연희는 민우와의 오랜 이별 끝에 재혼을 했지만 그 후에도 민우를 잊지 못하고 딸에게도 사랑을 쏟아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사라는 엄마를 가장 이해하고 사랑한다. 

엄마 내팽개친 딸이라는 오명을 쓸 수도 있지만 자신과 함께 살자는 권유를 이날까지 뿌리치고 있는 엄마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딸이다. 

사라는 그런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가끔은 자신이 차라리 현실 아빠가 아닌 민우의 딸로 태어났더라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엄마를 이해하는 딸로 성장했고 엄마가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길을 향해 엄마가 달려갈 수 있기를 기원해준다. 

 

기약없는 이별

 

네이버에서는 어쩌자고 코로나 때문에 만나기 힘들어진 가족들에게 이산가족이라는 표현을 썼을까... 

그 두가지가 그렇게 비례하는 건 아니지 싶은데 말이다. 

휴전선을 넘다가 목숨이 오가는 행동을 통해 남한으로 귀순했다는 국가적인 환영을 받으며 남한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적어도 예전에는 북에서 넘어오는 방법이 거의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별의 별 경로를 다 이용해서 한국으로 넘어오고, 이제는 한국의 자국민을 넘는 자유와 풍족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북한 이주민들이 사방에 있다. 

그래서 그런가.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그 사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희미해져가는 것 같다. 

625가 터진지도 벌써 71년이 지났으니 그 당시 젊은층이었다 해도 그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90을 넘나드는 고령이 되었을텐데.... 

그분들의 뼈저린 아픔이 새로운 시대속에 일어나는 도전, 기대, 결과들에 의해 서서히 묻혀져가는 게 그냥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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